어제 ‘유랑지구’라는 책을 읽었다. ‘삼체’라는 소설로 휴고상을 받은 류츠신 작가님의 초기작인데 공상 과학 장르의 단편 소설이다. 영화로도 나왔다던데 원작의 한 부분만 가지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 멸망 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가까운 미래에, 태양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적색거성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며, 지구를 살리기 위해 여러 나라 정부로 구성된 지구정부가 지하도시를 건설하여 시민들을 도피시키고, 지구 곳곳에 거대한 행성추진기를 설치하여 2500년에 걸쳐 지구를 새로운 은하계로 옮기는 대장정을 펼친다. 이 와중에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지하도시에서 버텨가는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단어와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더 이상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인간, 더 이상 사랑을 위해 아파하지 않는 인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삶은 계속되었다. 지하도시에서 태어나고 죽는, 햇빛 아래에서 노래하며 춤을 춘 적이 없는 이들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누가 그랬는데 사람은 살아가게 되어 있단다. 그래서 발음까지 삶과 비슷한 건가?
요즘 자꾸 생각이 드는 게 인간은 적응력이 참 뛰어난 생물이다.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무리 큰 고통과 좌절을 겪고서도 살아가게 된다. 아무리 불행하고 지쳐도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고 싶다고 울부짖으면서도 여전히, 그만큼 열심히 살게 된다.
어쩌면 생존하는 것 그 자체, 그게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게 만드는 건 인간의 생존 본능 말고 또 뭐가 있는가?
류츠신 작가님은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더 좋은 날이 오리라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아픔과 시련이 언젠가 끝이 나리라는 희망.
“예전에는 돈, 권력이나 재능을 가지면 부자였지만, 요즘에는 희망만 가지면 부자야. 희망은 이 시대의 금과 보석과 다름이 없으니 살아 있는 한 지켜야 되는 존재야.”
– 유랑지구
소설에서 나온 구절인데 마음에 들어서 밑줄을 그어 표기해 놓았다. 돈, 명예, 권력, 존엄까지 뺏기면 우리에게 남는 건 희망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희망마저 잃으면 몸은 살아 있어도 영혼은 죽는다. 그게 과연 살아 있는 건가?
생존하는 것과 희망하는 것, 그게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명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