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이동 통제령이 풀린 이후로, 6개월만에 외출을 했다. 남자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간 건데 식당으로 가는 길에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옛 캠퍼스를 지나갔다.

잠시 차를 세우고 멀리서 바라봤더니 익숙한 흔적 하나도 없이 낯선 풍경이었다.  정문 앞에 있던 나무들도, 교실 겸 행정동으로 쓰이던 회색 건물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높은 흰색 병원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길 건너편에 늘어서 있는 상가도 인적이 드물고 한적했다. 가게도 드문드문 열려 있는 걸 보니 평일 주말 상관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북적이고 가게마다 성업이었던 광경이 생각났다. 맛집도 많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는 곳이었고, 때문에 불평도 하곤 했다. 점심 하나 먹기 위해 줄을 한 시간 서야 된다니 캠퍼스를 왜 이런 데에다 지었는지 모르겠네, 라며 빵으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있다. 

사실 캠퍼스라기에 좀 초라한 곳이었다. 방치된 건물을 간단히 인테리어하고 교실과 재정동으로 쓰는 3층 건물이었다. 화장실이 네 개밖에 없고 도서관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 건물을 따로 빌려서 마련했다. 공간이 워낙 작아서 도서관이라기보단 독서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다 추억이 됐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화장실, 방음이 잘 안 돼서 선생님마저 소리를 낮춰 강의를 할 수 밖에 없는 교실,  학생 식당이 없어서 학교 앞에 세운 포장마차에서 점심을 먹고, 시험이 끝나면 기분전환으로 건너편 상가에 가서 맛있는 걸 먹고 노래방에도 가던 시절. 

그때 문득 생각났다. 현실에 없어져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이제 우리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들이 유령과 비슷하다는 사실. 죽은 자처럼 다시 만날 수 없고, 마치 외딴섬처럼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다는 말이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건물들에게도 넋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디에, 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영혼이라는 개념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인간은 영원을 추구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사라지지 않는 방법, 물리적으로 쇠락되고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되어도 소멸하지 않는 길을 찾아내고 싶어서인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영혼과 영원을 발음이 비슷한지도 모른다.   

저승이라는 말도, 이승을 지나 저 다음 세계에서도 어떤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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