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떠난 사람들이 종종 생각난다.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 한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다 여겼던 인연들인데 이제 아득한 기억으로만 남아 그 부재를 거의 알아챌 수도 없고, 한동안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도 잊혀졌다. 이들과의 이별은 어느 정도의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아픔도 없었고 남겨진 것도 없었다. 마치 생명이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삶은 계속되었다.

또한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떠난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인사도 한마디 말도 없이, 마치 하룻밤 사이에 불 타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처럼. 이들이 남긴 건 충격, 아픔 그리고 혼란스러움으로 이루어진 수수께끼다. 나는 그을린 잔해 위를 헤매며 수많은 조각 중에서 방심으로 놓쳤던 단서를 애써 찾으려고 했다. 함께 웃고 울며 지냈던 그 집들의 남겨진 뼈대를 바라보며 절규해 보기도 했지만 돌아온 건 오직 내 메아리뿐이었다. 절실한 내 마음을 비웃듯이 차갑고 냉혹한 소리였다.

그리고 나를 떠날 줄은 꿈에서도 몰랐었던 이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 왜 꼭 가야만 했는지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기 쉬워진 건 아니다. 이제 영영 되찾을 수 없는 내 마음의 조각을 퍼 주었던 사람들이니까. 이들이 차지했었던 내 영혼의 구석구석에 큰 구멍들이 생겼다. 나중에 아물면 새살과 원래의 살의 경계를 명시하는 깊은 흉터가 남겨질 상처들이다. 그리고 고통도 함께 안겨주었다. 날카롭고 아리면서도 무디고 차가웠고 그 고통의 진정한 모습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어서 그저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비명을 지를 힘도 없었다. 분노보다 더욱 무겁고, 슬픔이라기엔 은근히 섬뜩한 빛이 번뜩이는 그 감정 앞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떠난 사람들이다. 산 자가 갈 수 없는 길에 오른, 내가 영영 닿을 수 없을 곳으로 가 버린 이들. 잠을 못 이루는 밤엔 수많은 ‘만약’ 속에 뒤엉킨 운명의 실타래를 풀려고 애써 보곤 하지만 그게 결국 무의미한 짓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의 결말을 이제 더 이상 바꿀 수 없으니까.

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온라인 친구. 10년 넘게 지내다가 갑자기 멀어진 ‘베프’. 어쩌다가 연락이 끊긴 펜팔.

나와 두 번 이별했던 할머니. 한 번은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에, 또 한 번은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감히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겠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도 나를 떠나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길 것과 그들을 대체하게 될 사람들.

내가 떠난 사람들. 그게 의도적으로 이별을 선택했던 건지 나도 모르게 외면하게 되었던 건지. 멀어지는 내 뒷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내가 만든 폐허 속을 헤매야만 했던 사람들.

이제 이름조차 기억해낼 수 없지만 가끔씩 꿈에서 나타나는 사람들.

나는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시간, 꿈과 희망, 또한 두려움과 아픔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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