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많이 고민해 본 질문이다.
얼마 전에 내가 아는 작가분의 단편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봤다. 함축적인 표현과 중국어로도 조금 껄끄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가 많이 들어간 데다 문화적으로 잘 옮겨지지 않는 개념도 많아 도저히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번역자로서 내가 얼마만큼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지, 또는 가독성을 위해 글을 다듬는답시고 작가의 개성과 정서를 내 맘대로 바꿔 버린 건 아닌지에 대해 계속 고민해 보면서 직역과 의역 사이에 왔다갔다했다.
온갖 고민을 하고 겨우 작업을 끝낸 후에 약속했던 대로 내 변역을 작가님에게 보내 드렸다. 이틀만에 연락 주셨는데 생각보다 긍정적인 답장이었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이 말이다.
“번역은 창작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요. 다른 사람이 정해 둔 틀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말을 보고 전에 다른 번역가분이 쓰신 글에서 본 문구가 문득 생각났다. ‘내 번역은 원문의 노예다’라는 말이다. 번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아무리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원문이라는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작과 달리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말과 사유에 숙박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글쓰기, 그게 바로 번역이다. 그래서 그런지, 번역을 하다 보면 차라리 본인만의 글을 쓰고 싶어진다고들 한다.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 작가가 되는 꿈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해서 나중에 나만의 얘기를 쓰고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되기 어렵겠다는 사실. 글을 잘 못 써서 그런 게 아니라 쓰고 싶은, 남에게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다. 수많은 단어들을 두고 저울질하며 적절한 말을 하나씩 골라내서 벽돌을 쌓듯이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것이 즐겁다. 다 쓴 글을 가지고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 주고, 읽기 편한지 확인하기 위해 낭독하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빈틈을 하나씩 고민해 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노래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노래를 음절로 분해하고 음절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어떤식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가수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바로 그런 과정이고, 그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을 하게 된 거 아닌가 싶다. 서로 다른 문화 간 사이를 좁혀 준다거나 좋은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는 것 같은 거창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데 할 만한 얘기가 없다 보니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라도 해체시키고 재조합해 보는 것이다. 작곡을 안 하는 가수는 있다 해도 창작하지 않는 작가는 없으니까.